야한여자, 변태같은여자는 노예녀로써 좋은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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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노예녀로써 야한여자가 필요없다.
나는 여자를 노예로 거느리고 싶은 판타지가 있는 사람이다.(대부분 성적인 것으로 쓰기위해서)
나는 얼마전까지 야한여자, 변태같은 여자를 노예녀로 삼고 싶어하였다.
야한여자가 나의 노예가 된다고 한다면 내 욕구를 채우는 일이 더 손쉬워 질 것이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온 믿음 때문이었다.
하지만 생각을 해 본 결과 그것이 아니라는 결과에 다다랐다.
생각해보면, 야한여자는 야한짓을 하기위해 노예가 된 것이지 복종하기 위해 노예가 된 것이 아니다.
만약에 내가 하는 명령이나 지시 혹은 어느것이든 그 야한여자가 자기의 야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자기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다른사람에게 가겠지?
이게 맘에 들지 않는다.
하지만 그럴 확률이 높다.
왜냐하면 나보다 야한짓을 잘하는 남자는 하늘의 별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.
세상에는, 나보다 근육질인 사람도 넘쳐나고
나보다 정력이 좋은 사람도 넘쳐나고
나보다 꼬추가 큰 사람도 넘쳐난다.
결국에는 쉽게 갈아치우는 것이다.
이렇게 말 할 수도 있겠다.
야한여자가 야한짓을 얼마정도 원하건 그냥 네가 원하는대로 하면 되는거 아닌가?
네가 주인이면?
뭐,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.
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야한여자는 야한짓을 하기위해 노예가 된 것이지 복종하기 위해 노예가 된 것이 아니므로 쉽게 떠나버린다는 것이다.
노예녀가 중간에 그만두던가 떠나버리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계속 할 수 없다.
나는 주종관계에서 주인에게 중요한 것은 '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가?' 라고 보거든
노예에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으면 그건 주인이라고 볼 수 없지
그러므로 나는 야한여자, 변태같은 여자는 필요없다.
나는 내 말을 잘 듣는 여자를 노예녀로 삼고싶다.
노예녀는 ‘야한짓’을 원하는게 아니라 ‘복종’ 그 자체를 원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.
내가 무엇을 명령하건 명령 그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.
그렇다면 명령이나 지시 그 자체에는 불만족스러운 것이 없는가?
더 야한짓을 하기위해 주인을 바꾸는 것처럼, 더 나은 명령을 해주는 사람을 찾아서 주인을 바꿀 수 있지 않는가?
첫째로 더 나은 명령이란 없다.
상황마다 다른 것이다.
이것에 비유할 것을 찾는중인데 잘 안되네
빈약한 비유를 들어보겠다.
좋은 물이란 없지
그냥 물은 목마른 사람한테 가면 좋은게 되고
물로 배가 빵빵한 사람한테 가면 안좋은게 되는거지
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서 그 위는 좋은명령 그 아래는 안좋은명령 이런게 없는거지
둘째로 내가 말한 '복종'은 '모든명령'에의 '복종' 이다.
앞서 물의 비유에서 말했듯이 특정 명령은 특정한 노예녀한테는 안좋게 들릴수도 있다.
하지만 일부명령은 좋아하고 일부명령은 안 좋아한다면 야한여자나 별 차이가 없는 셈이지
쪼끔 나은 정도?
나의 노예녀는 명령받고 그대로 따른다는 것 그 자체에 흥분하는 여자였으면 좋겠다.
오해하지 말길 나는 섹스를 좋아하고 야한짓을 좋아한다. 그것도 엄청
하지만 그것은 말 잘듣는 노예녀 에게도 시킬 수 있다.
나는 단지 야한짓이 노예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.
중간 정도도 안되고 비유를 하자면 뭘 살 때 끼워주는 사은품 아니면 홍보용 종이쪼가리 정도
그정도는 있으면 좋기야 하겠다
뭐, 물론 야한여자만이 가능한 것이 있다.
야한 단어나 문장에 익숙하다던가 잘 말한다던가 더 잘 받아들인다던가
약간의 즐거움을 주는 것들 말이야
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게임의 즐거움 같은 것이다.
게임을 하고 이기기도 하면 즐겁지만 끄고 나면 허무하듯이 지속되지도 않고 쉽게 사라진다.
이 글을 쓰고 가만히 보니, 내가 얌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.
쉬운것만을 찾는? 그런사람 말이다.
물론 근육도 노력으로 어느정도되고 정력도 그렇고 고추도 약간은 그렇다.
하지만 난 노예녀의 쾌감에 그다지 신경쓰고싶지 않다.
나는 그때그때 나의 욕구에 충실하게 노예녀에게 명령을 할 것이다.
나는 그저 내 욕구를 채우는데에 노예녀를 이용하고 싶은거지 노예녀 욕구를 채워주려고 노력하고싶은게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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